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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실씨가 죽었다는 기사를 처음 봤을 땐 저도 조금 놀랐습니다. 그저 놀랐을 뿐, 슬프지는 않았어요, 전혀. 안재환씨인가가 죽었을 때도 마찬가지였구요.

제가 그녀의 죽음에 무덤덤한 가장 큰 이유는 그녀가 저와 전혀 관계없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박태환의 금메달이 제게 아무런 감흥을 일으키지 않은 것과 같은 이유지요. 전 최진실씨가 출연한 작품은 영화, 드라마 통틀어 <미스터 맘마>와 <남부군> 이외에는 본 것이 없어요. 둘 다 제게 그렇게 인상적인 영화는 아니었구요. 전 아마 우디 알렌이나 장만옥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다면 그 죽음의 방식을 불문하고 꽤 오래 깊게 슬퍼할 것입니다. 최근 동물해방에 관심이 많은 전 최진실씨의 죽음보다 어제 웹서핑하다가 발견한  Harp Seal의 사연이 더욱 가슴 아팠습니다. 근거없는 소문을 냈다는 그 증권사 직원보다 모피를 두르고 다니는 년들에 대한 증오가 더욱 컸구요.

때로 저는 타인의 죽음에 대해 비정하다 할만큼 무감각한 경우가 있습니다. 존경받는 과학자이자 교육가였던 포항공대 초대총장 김호길 박사가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셨을 때, 부적절한 장소에서 그분의 죽음에 대해 위악적인 논평을 하는 바람에 같은 장소에 있던 후배에게 노골적인 경멸의 말을 들었던 적도 있어요. 그렇다고 제가 죽음 자체에 무감각한 건 아닙니다. 전 자동차에 치여 길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동물의 사체만 봐도 육체적 통증 비슷한 슬픔을 느낍니다. 심장에 생치기가 생기는 듯 해요. 반면 자살에 대해선 감정의 동요가 생기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동정하거나 슬퍼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되거든요. 그녀의 죽음 또한 마찬가지구요. 

자살은 자신의 의지에 따른 선택입니다. 자살이 우발적으로 일어난 경우일지라도, 삶의 고통보다 죽음 이후의 허무 혹은 다른 삶이 더 견딜만하다는 판단의 결과라는 점에는 차이가 없지요.  그녀의 삶이 자살을 결심할 만큼 충분히 고통스러웠고 그것이 자살의 원인이었다면, 그녀의 삶은 비극일망정 그녀의 자살을 비극이라고 생각할 이유는 없습니다.

또한 자살은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죄악입니다. 전 그녀의 죽음은 전혀 슬프지 않지만 그녀의 남겨진 두 자녀들은 무척 안쓰럽습니다. 혈혈단신이라면 모를까, 하물며 재판으로 친권까지 가져올만큼 자식에게 애착이 있는 부모라면 그렇게 무책임하게 자살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남겨진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감이 저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자살의 유혹을 이겨내는 이유입니다. 자살은 참으로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선택입니다.

전 특히 돈이나 인기, 권력 등을 갖춘 사람의 자살엔 대해선 좀 더 모진 마음이 됩니다. 어떤 자살은 삶의 벼랑끝까지 내몰려 달리 방법이 없는 최후의 선택일 수 있습니다. 반면 그녀의 삶에는 더 많은 선택지가 있었을 것이고 그때마다 그녀는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마약으로 탕진한 전인권의 재능이 안타깝긴 하지만 그의 계속된 멍청한 선택을 슬퍼해 줄 필요는 없습니다. 그녀의 자살이 온전히 그녀가 자초한 일의 결과는 아니지만, 적어도 그녀에겐 살아남을 수 있는 더 많은 능력과 더 많은 이유가 있었습니다. 전 그녀의 자살보다 가령 아프리카 빈국 어느 아이의 아사가 사회적 약자의 죽음이란 점에서 더욱 슬퍼할만한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비루한 삶이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이겨나가는 것이 생명에 대한 예의이고 삶에 대한 윤리적인 자세라는 데 동의하신다면 그녀의 자살을 슬퍼할 이유는 없습니다. 



전 지금 타인의 죽음을 쉽게 평가하고 판단하는 분별없는 짓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망자에 대한 비난이 아니라 제 자신에 대한 '경고'라는 변명으로 용서가 될런지요. 어떤 죽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 결과만으로 생전의 실수나 어리석음이나 무책임을 잊게 만듭니다. 특히 그 죽음이 자살인 경우라면 그 결과에 대해 스스로 더욱 관대한 예측을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결국 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한다는 확신의 순간이 오면 그냥 자살로서 삶을 끝내버리면 된다,는 생각이 강렬한 유혹처럼 저를 붙잡는 경우가 있습니다. 삶에 충실하지 못하고 최소한의 노력조차 기울이지 않을 때, 이러저러한 자기변명을 스스로도 더 이상 납득하지 못 할 때, 그 유혹은 유일하고 현명한 선택지처럼 느껴집니다. 죽음, 특히 자살에 대한 감상적이고 안일한 평가는 삶에 대한 의욕과 성실한 태도를 무의미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만듭니다, 적어도 저의 경우엔.

그녀의 죽음은 제게 슬픔을 느끼게 하지는 않지만 대신 삶과 죽음에 대해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교훈을 가르쳐줍니다. 자살은 남겨진 자에게 모든 걸 떠맡기는 비겁하고 무책임한 행동이라는 것. 성실히 그리고 현명하게 사는 것 이외에 삶에 대한 어떠한 변명도 있을 수 없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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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06
10:3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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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0828

2008.10.07
11:34:16
살면서...육식은하지만 다이아와 모피는 걸치지않으려는.......생각.....

Cocteau

2008.10.07
14:14:15
허허... 다이아같은 거 안 하셔도 아름다우신데요 뭘. 짐승껍데기 대신 뭔가 친환경적이고 질좋은 옷감으로 된 걸... 천연염색도 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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