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시적 제 장래희망은 '돈많은 백수'였어요. 영화 <빅 대디>나 <어바웃 어 보이>의 주인공같은 삶이요. 백수가 되서 마냥 놀고먹겠다는 바램은 아니었어요. 생업에 쫓기지 않으며, 평생 하고 싶은 일이나 하며 살고 싶었던거지요. 그 당시에는 돈걱정없이 영화보고 음악듣고 책읽으며 평생을 살고 싶었어요.
서울에서 6년의 삶도 돈많은 백수를 지향했습니다만 내내 백수였을 뿐 돈은 그지같이 없었어요. 그냥 영화나 보러다니고 책이나 사다볼 수 있을 뿐, 근근히 생활이 꾸려지는 정도. 희망도 변화도 없는 삶. 그렇게 몇년만 더 살았다면 폐인이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뭔가 바뀌어야한다는 생각에 무작정 내려온 청주... 내려오길 정말 잘했어요. 처음 반년정도는 정말 폐인의 삶을 살았지만... 지금은 '돈많은 백수' 비슷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수입이 많은 건 아니지만 야근 안하는 직장인의 근무시간 정도 일하고 있고 남보기 부끄럽다 싶지 않을만큼의 금액을 벌어들이고 있어요. 그 덕에 돈이 문제가 되서 하고 싶은 걸 못 하지는 않게 되었어요.
꽤 바쁘긴 하지만 돈과 관계없이 그냥 하고 싶을 뿐인 일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요가, 수영, 요리, 피트니스, 일본어, 피아노 학원 다니며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어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면 가능하지 않을 시간을 단지 즐거울 뿐인 일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비슷할 뿐 정말 '돈많은 백수'는 아니지요. 결국 돈많은 백수는 없는 거였어요. 부모를 잘 만나든지 로또에 당첨되든지, 그 이외의 길은 없는 거 같아요.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에요.
삶이 이렇게 바뀌고 보니 여러분들은 이미 알고 계실 사실 하나를 이제야 알게 되었네요. 돈은 삶의 질 뿐만 아니라 삶의 크기도 결정한다는 거. 서울에서의 삶은 정말 주먹만한 삶이었어요. 타인과의 소통도 없고, 당장 사라진다고 해도 누구하나 알아차리지 못할만큼 작고 희미한 삶. 서울에서는 지금 제가 좋아서 하고 있는 일들이 제가 좋아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거나 알아도 돈이 없어 실행하지 못했습니다. 서울에서보다 두배쯤 늘어나는 수입 덕분에 삶이 세배쯤은 커진거 같아요.
이걸 왜 이 나이 먹고서야 알게 됐을까, 후회하고 있습니다. 남들과 비슷한 나이에 돈을 벌기 시작했다면 지금의 삶은 훨씬 더 커졌을텐데요. 서울에서는 무리지만 청주였다면 제가 지금 살고 있는 산남동에 제 소유의 아파트라도 한 채 갖고 있을텐데요... 옆에 마누라도 있을테고...... 하지만 어쩌겠어요. 그따위로 살아와서 지금 꼬라지가 이따위인데...
문제는 이런 삶이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는가,라는 점. 지금 하고 있는 일도 정년은 딱히 없겠지만 어떤 peak가 있어서 수입이 점점 줄어들테고 심지어 이 바닥에 발을 붙일 수 없게 될지도 모르는 일인데...
하지만... 요즘의 삶은 풍요롭고 즐겁습니다. 피곤하고 바쁘고 불안해도 포기하고 싶지 않아요. 매년 하는 생각이긴 하지만, 일단 올 한해는 그냥 아무 생각없이 지금처럼 살아야겠어요. 제 삶이 지금처럼 만족스러웠던 적이 이전엔 없었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