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wang.jpg 황석영 ‘변절’ 논란…“李정부 중도실용” 평가에 “궤변” 비판

한국문학은 시를 제외하곤 거의 읽지 않았기 때문에 황석영의 그 유명한 책들도 읽은 것이 없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삼포로 가는 길>은 읽었군요.) 질곡많은 현대사에서 펼쳐치는 가슴아픈 사연들을 읽으며  새삼스레 분노와 절망감을 느끼고 싶지 않았거든요. 베트남전이나 광주항쟁이나 민주화운동이 온전히 과거에만 속한 일은 아니지만, 한때나마 그것들에 대해 납득할만한 역사적 평가를 내리는 시대가 되었고 이 정도면 저도 역사적/사회적 채무감을 덜 느껴도 되지 않을까, 싶은 기분이었어요.

하지만 아시다시피, 씨발스럽게도, 황석영 소설의 어떤 소재들이 다시금 동시대성을 느끼게 하는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문학계와 진보세력 내에서 황석영쯤 되는 분들의 비판과 견제가 그 어느때보다 절실하고 간절하게 되었구요. 마침 <무릎팍 도사>에서 본 황석영의 소탈하면서도 거대한 위엄이 무척 인상적이기도 해서, 전 뒤늦게나마 존경을 바친다는 기분으로 그의 소설들을 전부 읽어볼 계획을 하고 있었습니다. 씨발, 그런데 저 미친 노인네가 저런 미친소리를 하셨네요.

전 실망을 넘어, 아니, 도대체 왜 저런 미친 짓을 하는 걸까,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간의 문학적 업적으로 평단과 작가들에게 최상의 찬사를 받아왔고, 생활인으로서도 충분한 경제적 수입을 유지하고 있으며, 시대의 양심으로 사회적인 존경을 받아오던 그가, 왜 이제와서 저런 미친짓을 하는 걸까,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씨발, 겨우 이명박 특임대사나 하려고 그 오랜 세월의 핍박과 망명생활을 감수했던 건가요?

정확한 내막은 모르지만 납득할만한 설명은 있습니다. 노벨상에 관련된 루머들이 그 하나일테죠. 문학적 능력과 사회적 영향력에 대한 자기평가 끝에 자신의 야망과 비전을 실현할 수 있는 시기가 되었다고 결론내렸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진보세력이라는 평가를 포기하고 자신의 욕망에 솔직해지는 편이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거구요.

이유가 어느쪽이든 간에 추잡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이, 특히 나이를 충분히 쳐먹고도 자제력을 잃고 자신의 욕망만을 추구하게 되면 얼마나 추해지고  뻔뻔해지는지 황석영 선생께서 몸소 보여주고 계시는 거죠. 씨발, 제가 아직, 그리고 결코 읽어보지 않은/을 그의 소설이 주는 그 어떤 교훈이나 메시지도 이보다 더 강렬한 정서적 충격을 주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많은 부를 축적하고 사회적인 명성을 이뤄내는 것이 존나게 중요한 문제라는 건 저도 압니다. 씨발, 하지만 그게 인간이 저 지랄로 추해져도 되는 만큼 중요한 문제인가요? 자신의 역사를 철저하게 부정하고 자신이 수십년동안 추구한 가치들을 내팽개칠만큼 절박한 문제이냐구요. 제가 이 나이를 먹고 육십줄을 훌쩍 넘은 노인네한테 이런 말을 하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는데, 씨발, 니가 앞으로 살면 얼마나 산다고 그따위로 욕심을 부리고 있냐? 죽을 때 다 싸 짊어지고 갈 것 같냐?

많은 재산과 사회적 영향력을 이뤄낸 사람은 분명 거대해 보입니다. '실용주의'라는, 룰도 윤리도 없는 욕망의 논리가 시대정신으로 통하는 요즘은, 심지어 사회적으로 존경받을만한 사람처럼 다뤄지기도 하구요. 뭐하나 이루어낸 것이 없는 소박한 인생은 한심하거나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겁니다. 하지만 저에겐 뭔가를 많이 이뤄낸 사람이 거대해 보이거나 존경스럽기보다 한심하거나 경우에 따라선 어리석게 보입니다. 그를 그 많은 재산과 영향력으로 이끈 욕망이 어떤 사람에게 피해를 줬다면-대부분의 경우 그랬을 거라 생각됩니다만-, 그건 멋지고 폼나는 인생이 아니라 비난받아 마땅한 나쁜 인생입니다. '폼나니까 피운다'라는, 중고딩 남학생이 담배를 처음 피우기 시작하는 논리와 다를 바가 없잖아요? 씨발, 폼나기는 개뿔, 담배연기 때문에 속으로 욕을 해대는, 예컨대 아파트 윗층 주민이나 통행인 같은 사람들이 있는데.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내가 세상을 구하겠다는 터무니없는 자기중심주의가 평화롭게 사는 주위의 평범한 사람들을 불행으로 이끄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령 <삼국지>의 그 많은 영웅들의 정치적 욕망 때문에 죽임을 당한, 수십,수백,수천만명의 이름없는 민초들처럼. 군대시절, 이문열의 <삼국지>를 억지로 다 읽으며, 이 무슨 미친짓들인가, 유비고, 조조고 그냥 집에 가만히 틀어박혀 농사나 지었으며 적벽대전 수십만인가 수백만인가 죽지 않고 잘먹고 잘살았을텐데, 울컥했던 기분이 들었더랬죠. 이딴 한심한 책에 수백년간 사람들이 열광한 걸 보면, 지 잘난맛에 사는 잠재적인 황석영이 지금도 수두룩하게 존재하는 걸 껍니다. 씨발, 세상 조용해질 날이 없겠군요. 아... 그러고보니 황석영도 삼국지를 번역했었죠, 아마.

황석영은 현명한 노인네였습니다. 높은 수준의 윤리의식과 과감한 실천력도 갖고 있었구요. 그런 사람이, 저 나이를 먹고도 자신의 욕망 하나를 조절하지 못해 멍청한 선택을 한 겁니다. 앞으로 그의 인생이 적어도 향후 몇 년간은 이전보다 더 폼날지는 모르겠으나, 많은 사람들이 그를 한심한 인생 혹은 탐욕스런 노인네로 기억하게 될 겁니다. 씨발, 인간이 추악해지는 건 한 순간의 일이군요. 숨이 넘어가는 그 순간까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어야 합니다. 멍청하고 탐욕스럽지 않도록. 제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얻은 교훈입니다. 저 멍청한 노인네로부터.  


아, 압니다. 저처럼 이뤄낸 게 개뿔도 없는 인간이 할 소리가 아니라는 걸. 하지만 뭐 그런 생각이 드는 걸 나보고 어쩌라고.


이런 선택을 하시는 분도 있으니 그나마 다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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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1
13: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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